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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포스트' 기자란 무엇인가

by 하 루 살 이 2018.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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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 4시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인해 컨디션을 제대로 찾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토요일 아침 8시30분부터 지방 일을 나섰고, 결국 그날 토요일 자정을 넘겨서야 차가워진 서울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착잡한 심정들이 뒤얽힌 상태로 집까지 걸어갔다. 날씨는 그 무덥던 여름을 비웃는 듯 차가워져 있었고, 집에 돌아와보니 토요일 아침 급하게 약속 장소로 나간 탓에 정돈되지 않은 이불이며 잠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걸 하나하나 챙기들고 정돈했고, 무거워진 몸둥아리를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집안에 춥다는 걸 느꼈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쉽게 잠들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 피곤한 상황에서 나는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다. 


"과연 내가 기자인가."



고민이 많아서 일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는 인간관계들이 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정작 내가 힘쓰고 애써야 하는 일에선 나는 무기력하고 비겁하고 비참했다.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 무엇도 기쁘지 않았다. 피곤해도 피곤한 것 자체가 즐겁고 기뻤던 기억이 지금도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영화 '더 포스트'를 보니 더욱 그러하다. 



이 영화는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다. 2017년 작이다. 미국 대통령 닉슨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언론의 이야기이자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고민을 던지는 영화다. 


하지만 나는 보는 내내 착잡했다. 기자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 사장인 캐서린이 편집장 벤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항상 맞을 수 없죠. 우리는 항상 완벽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계속 해나가야죠. 그게 우리 일이잖아요. 그렇죠."


언론을 '민주주의의 수호자', '역사의 초고'라는 타이틀을 붙여 설명한다. 


"언론은 보도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고 그걸 포기하는 건 언론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너무나 멋진 표현이다. 그래서 기자를 시작했고, 다들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누군가는 '더 포스트'를 보면서 뉴욕타임즈가 아닌 워싱턴포스트가 영화에서 주목받은 이유, 여성 사장인 캐서린의 고충과 변화, 편잡장의 언행, 등등을 주목한다. 나는 돈 맛을 본 언론을 걱정했다. 


'언론도 기업이다', '돈을 벌어야 월급 줄 것 아니냐' 기타 등등. 기사 하나 내리는데 거액을 제시하는 기업 앞에서 기자에게 전화 한 번 하지 않고 제목을 바꾸고 사진을 내리고 심지어는 기사를 내려버리는 언론사에서 일하다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잠이 올래야 올 수 없는 게 기자의 현실이고 악몽이며, 고통이다.



자본에 잠식되어버린 언론의 환경 속에서 과연 '더 포스트'가 말하는 여성의 인권과 지위, 편집권, 투자자에 대한 언론의 설득이란 게 통할 수 있을까. 차라리 저 시대에는 한 번 찍어내서 나오면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이점이라도 있었다. 이점이라 함은 영화에서 말하는 '작은 혁명'이라도 꿈꿀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 언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종이에 찍어 나오는 뉴스보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뉴스의 영향력이 훨씬 막강해졌다.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기사를 인터넷에서만 내릴 수 있다면 기업은 무슨 짓이라도 다 한다. 설명과 설득이 안 되면 회유하고 압박하고 협박한다. 무슨 짓이든 다 하려고 한다. 인터넷에서 기사만 내릴 수 있다면. 


언론은 어떠한가.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이용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편집자들이고 경영자들이다. 사활을 걸고 의도적인 기사를 쓰게 만들어서 본인들 마음대로 편집하는 데 아주 기자들의 이골이 나도록 전문화되었다. 인터넷 기사는 수십번씩이라도 수정할 수 있도 당장이라도 지워버릴 수 있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자본가의 자본이 왔다갔다 한다.

 


더 이상 기자가 꿈꾸는 작은 혁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 언론 환경이 그렇게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 환경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종이를 언론에서 지워가고 있다. 언론도 알고 있고 기업도 알고 있다. 서로가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돈으로 기사를 바꿔버리는 세상 말이다. 


'더 포스트.'


가슴 아프게 봤다. 저런 긴장감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끔 있었다. 친기업적 편집자를 만나면 저런 긴장감? 다 없어진다. 기업에서 전화오기 전에 편집장에게서 훨씬 빨리 전화가 온다. 그 다음날부터 문제가 된 기사는 발제부터 내놓을 수 없다. 편집자가 알아서 기자가 설설 기게 만든다. 기자가 그게 싫으면, 나가야 한다. 취업문이 점점 작아지는 세상에서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의 이직이란 악몽이고, 고통이며, 불가능이다. 그래서 한 선배도 이런 말을 한 것이리라. "갈 곳 없이 사표 쓰는 거 아니다." 


이 영화는 언론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지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 말미에 다른 언론사들도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와 함께 가고자 1면에 닉슨과 그 정부가 저지른 베트남전을 올려 연대한 것처럼 모든 기자들이 언젠가 이 비뚫어지고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연대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까진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푼돈 받아가며 살아가는 이런 기자 생활에 환멸을 느끼며 이 업을 버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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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자는 계속 채워져 갈 것이다. 박근혜를 탄핵시켰던 언론의 힘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영화가 2017년에 만들어 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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