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괴테와 대화하며 "철학은 조직화된 반론의 정신이다"라고 말했다.
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
다시 테오도르 W. 아도르노로 돌아왔다.
그의 '순수이성비판 강의'를 읽으면서 인간의 사유가 얼마나 위대한지 느꼈는데 이번에는 그의 다른 책을 통해 몇 페이지도 못 가 생각이 깊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틀 동안 많은 비가 내리더니 연휴 마지막 날 이토록 햇살 가득한 날씨를 선사한다. 오전에 근육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 여유롭게 나와 공기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을 한다.
그러다 챙겨 나온 이 책을 펼치고 읽고 있자니 한 구절 한 구절이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 생각들 붙잡으려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위대했던 한 분도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떠오르는 영감을 붙잡기 위해 매번 펜을 들고 부지런히 적지 않았던가. 나는 그분의 행동 하나하나를 본받고 싶다. 그렇게 남겨진 것들은 나에게 많은 교훈과 지혜를 가르친다.
아도르노는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철학자며, 또한 유대인이다. 어릴적부터 뛰어난 성악가인 어머니와 이모 곁에서 음악을 가까이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왔다.
이후 성인이 되고 나서 칸트, 헤겔 등 철학자들의 사상과 사유를 파고들었고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와 같이 인간이 자칫 빠져들어가거나 그 안에서 조종당할 수 있는 끔찍하고 폭력적 분위기에 저항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찰하고 사유했다.
변증법이란 것도 어려운 단어로 개념화되어 있어 고리타분해 보일 뿐이지, 쉽게 생각하면 매우 간단한 생각 정립의 방법론이다.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변증법)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 부단히 시도한다는 점.
그 시도의 주체는 본인에게 있다. 거룩한 종교인이나 죽어 없어진 사상가나 자기 위에 군림하듯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나 본인의 길을 선택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할 근거가 없다.
조직의 힘이란 것도 그러하다. 개인은 그것을 거부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 결과의 책임은 본인이 질 뿐이다. 다만 자유롭게 선택된 행동이기에 위대한 것이다.
종교인들이여. 함부로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교제, 봉사, 희생, 겸손할 것, 순종할 것을 주둥아리에 담지 마라. 개인의 생각을 무시 말라. 신은 너희 머리 위에서 니들의 무식함을 비웃고 있다. 정형화된 종교의식을 가지고 판단하니까 사진도 사업도 예술도 이해 못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의 뜻일지 아무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누군가의 조용한 시간이 너희의 돼지 멱따는 식의 억지 회개와 자백보다 백번 위대한 '신과의 대화'일 수 있다.
골방의 지혜는 기본적으로 '아무도 모른다'는 데 그 기초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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