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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by 하 루 살 이 2021.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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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말하다 38] 베드로의 배신과 회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던 그 베드로.

그가 어떻게 예수를 배신할 수 있었는가. 여전히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칼을 휘둘러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렸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몇 시간 후 예수를 배반한다? 성경 텍스트를 통해 결과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쉽게 베드로의 배신과 회심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배신은 결코 보통의 결단만으로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마가복음을 보자. 

 


비자 :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베드로 :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비자 : 이 사람은 그 당이라(곁에 있는 자들에게 말함) 

베드로 : (부인했다는 표현만 나오고 어떤 표현인지는 나오지 않음)

 

곁에 선 사람들 :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베드로 :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Then he begna to curse and swear,

"I do not know this Man of whom you speak.!"

 

 

 

이 마지막 말이 어떤가.

그는 저주를 '시작'했고 맹세했다. 누구를 향한 저주겠는가. 뻔하지 않은가. 그는 자신과 예수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첫 두 번의 부정은 소극적 부정이었다. 마지막은 저주는 달랐다. 예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말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를 '이 사람'이라고 했다.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배신은 이렇게 심각한 수준이었다. 가룟 유다가 선생을 팔아먹었을지언정 이런 식으로 배신하진 않았다. 결국 베드로나 가룟 유다나 둘은 패륜아 중의 패륜아요, 종류만 달리할 뿐 어느 것 하나 뒤로 빠지지 않는 최고 수준의 배반을 보여줬다. 일각에선 그렇기 때문에 4복음서에 모두 베드로의 배신이 담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드로가 훗날 마음을 돌이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을지언정, 그의 배신을 용납해선 안 된다는 초대교회의 공통 인식이 4복음서에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다. 누가 진실을 알겠는가.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에 심히 운 것이나, 가룟유다가 양심에 찔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나 배신은 똑같이 용납하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 교황청의 생각처럼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됐다고 쳐도, 그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배신자 베드로가 말이다. 그가 천국 열쇠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내려놔야 하는 것 아닌가! 

 

 

배신자 베드로.

 

 

그런데 베드로를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 또한 너무나 확실하고 명확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 

그는 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예수의 무덤에 달려가 요한보다 먼저 들어갔다. 예수의 말씀대로 갈릴리로 돌아갔다. 거기서 물고기를 잡다 예수를 알아본 요한이 "주시라!"라는 말 한마디에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어떤 기분이었겠는가. 그의 배신 행각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우나 물속에 들어간 그의 심정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몰상식적인 배신을 한 그가 예수 앞에서 할 말없는 인간임을 처절하게 느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는 목숨을 버리지 않았다. 부끄럽고, 한스러웠더라도 목숨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예수의 말씀대로 '돌이킨 후에'라는 말씀을 기억했을 것이다. 아무리 양심이 괴로워도 삶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죄스러움에 그는 살아서 죽는 날까지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가 말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는 사명을 가지고 전파했을 것이다. 결코 남들에게 없는 위대한 책임감이 그에게 생겼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의 예루살렘 설교가 2천 년이 지난 지금 읽는 이들의 마음에까지 감동을 주고 양심을 울리는 것이다. 돌아선 자의 사명감은 그토록 강력한 것이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For you were like sheep going astray, but have now returned to the Shepherd and Overseer of your souls. 

 

베드로전서 2: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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