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말하다 28] 예수의 마지막 7일,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예루살렘 입성 후 셋째 날에 있었던 10가지 일(이하 도표)
1. 무화과나무의 마름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 |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의 질문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
3. 예수의 비유 - 포도원을 소작인에게 맡기고 간 사람 |
4. 바리새인의 반박 - 가이사에게 세를 바침에 대한 질문 |
5. 사두개인의 반박 - 부활에 대한 질문 |
6. 서기관 중 한 명의 계명에 대한 질문 |
7. 예수의 반박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냐" |
8. 예수의 서기관에 대한 경고 |
9. 과부의 두 렙돈 |
10. 종말 선언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지 셋째 날 곧 화요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는 서기관에 대한 경고와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가 비교되듯 나온다. 나는 두 가지 사건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가복음을 보자.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
예수께서 연보궤에 대해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
서기관에 대한 경고는 단순히 그들의 외식함을 넘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라고 했다. 또 그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행동하고 타인에게 높임 받는 것을 원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 과부는 달랐다. 남을 의식하지 않았으며 시끄럽지 않았고, 조용히 남모르게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다. 곧 자신을 드린 사람이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으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왜 생활비 전부를 넣은 것을 두고 '자신을 드렸다'라고 표현했는가. 요한일서를 보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할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6-18
이 말씀 구조가 참으로 특이하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에 대한 말씀은 곧바로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도와주는 행위로 이어진다. 나는 이 말씀을 읽고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행위나 재물로 형제를 도와주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피 같은 돈'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재물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그러한데 귀하고 귀한, 내 목숨 같은 재물로 형제를 돕는다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성경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매우 현실적이다.
아벨의 제사도 그러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할 때 무엇을 열납 하셨는지 보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The LORD respected Abel and his offering,
but He did not respect Cain and his offering.
하나님은 제물만 열납 하신 게 아니다. 그 사람 자체를 열납 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바친다는 행위는 제물이나 물질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바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어떠한가. 돈만 바친 것이겠는가. 과부는 자신까지 모두 바쳤다. 형제에게 내 재물로 도움을 준 것이 목숨을 다한 사랑의 실천이 되듯이, 아벨의 제사가 나 자신까지 열납 된 제사였듯이, 과부의 두 렙돈도 자신을 드림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렙돈은 '적음'이라는 뜻을 가진 화폐 단위 중 최소 단위다. 헬라 주화로 고드란트의 절반 수준이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적은 돈을 낸 과부를 귀히 보셨다. 자랑함 없이, 누군가의 칭찬도 없이 조용히 두 렙돈을 가져와 연보궤에 넣는 과부를 생각해보자. 두 동전이 연보궤에 떨어질 때의 소리는 비록 사람의 기준에는 구차할지라도 하나님의 들으시기에는 가장 값진 소리였다. 저 여인이야말로 누구보다 자신을 온전히 드린 여인이었다. 누구보다 진정한 사랑을 실천한 자였다. 아벨처럼 자신과 제물이 모두 열납 된 자였다.
제자들은 어떠한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 그의 좌우편을 부탁했다. 다른 열 제자들은 이를 보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분히 여겼다. 예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불러다가 과부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는 자가 누구인가를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이 된 자가 누구인지 조용히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서기관들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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