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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인간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by 하 루 살 이 2015.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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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 - 빅터 프랭클 저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물인간으로 살아갔다'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나치당원들과 카포(유태인이었으나 수용소 안에서 유태인을 관리하며 나치당원보다 더 악질적으로 행동한 이들),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훗날 심리학적 연구를 한 저자 빅터 프랭클은 위의 말을 책 중간에 썼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새벽, 수용소 출입구 앞에서 동료 하나가 얻어맞아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어도 쳐다만보는 수감자들. 신발을 얻어 신지 못한 아이가 맨발로 눈 밭에서 온종일 일하고 발이 시커멓게 썩어서 들어와도 역겨움이나 무서움, 가엾음, 노여움이라는 당연히 들어야 할 감정이 없는 상황. 죽은 시체의 옷이 자기 것 보다 덜 헤져 있으면 얼른 벗겨 바꿔 입는 행동.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물인간처럼 무감각했다.

 

아우슈비츠는 그런 곳이었다. 모든 일에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다가는 미쳐 버릴 수 밖에 없는 장소. 살기 위해서, 하루라도 버티기 위해서는 그들은 무감각해야 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비정상적인 반응 자체가 그들에게는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부끄러웠다. 이 책을 읽었던 장소는 카페였다. 카페 이층으로 올라가 따뜻한 공기 중에서 카페인 향을 즐겨 맡았다. 밖에 눈이 내려도, 비가 와도 나는 그 안에서 내 시간을 즐겼다. 유태인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우연히 ‘죽음의 수용소’를 읽었을 때 이러한 조건들, 나를 만족시켜주었던 모든 조건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이 보이는 내면화 경향은 공허하고 황폐한 현실, 정신적으로 삭막한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나 과거로 도피하는 양상을 나타나기도 한다. 대단한 추억이랄 것도 없다. 자잘한 일상사, 그가 했고 겪었던 하잘것없는 일과와 사건들의 언저리에서 그의 기억은 자꾸만 맴도는 것이다. 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열쇠로 문을 따던 일. 전등을 켜고 전화를 받던 일. 수감자의 추억 속에 되살아나는 건 바로 이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추억에 잠길 때 그의 눈가엔 이슬이 맺히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수 p.75 


우리들은 연병장에서 혹은 바라크 안에서 .. 자신들의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마저 주어버리던 사람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강제수용소가 다른 건 다 강탈할 수 있어도 인간이 가진 마지막 자유..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는 생생한 증거였다. 

p.117

 


사실 유태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2차 대전 때, 인류를 기망하는 행동을 한 가해자들의 무감각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을 증언한 사람들의 증언과 참혹한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와 글들, 그 넘쳐 흐르는 증거들로 인해 생겨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무감각이야 말로 그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다.


마치 2차 대전에서 600만 명의 유태인이 희생당했다는 식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가 되는 일을 유태인들은 두려워해야 한다. 


이 책은 심리학적으로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있었던 일의 사실을 나열하는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 했다. 주관적인 시각임에도 객관적이게 보이는 이 아이러니를 독자는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으리라. 그들이 겪은 모든 상황도 아이러니한 역사 가운데 있었으니까. 친구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안 뒤, 뒤도 안 돌아보고 신고하는 행동을 어이없는 웃음의 아이러니로 설명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이런 상황은 유태인 그들에게는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어떻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음은 분명하다.


아우슈비츠의 경험은 분명 공감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고통이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삶의 정의는 공감할 수 있다. 즉, 이 삶이 실은 가치 있고 의미 있다는 것.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것. 이런 말을 누군가가 따뜻한 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에게 말한다면 나는 공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공감할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을 가지고 삶과 가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점도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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