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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이 떠오르는 이유

by 하 루 살 이 2015.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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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

 

오르한 파묵은 생소한 작가다.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임에도 한국에 알려진 부분이 극히 생소하다. 누구에게 가서 '최근에 읽은 책이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입니다'라고 말해도 그 책에 대해서 배경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는 오르한 파묵의 책을 정말 즐겁게 읽었다. 내용과 상관없이 이 안에 담겨있는 문장들이 나를 여행을 떠나게끔 이끌어줬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타인들의 삶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고, 이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더 시적이게 해줬다. 어느 친구의 말처럼 '세상을 시로 보자'고 한 말이 실감이 났다.


 

"그들은 길을, 가방을 잃어버린 여행객들을, 세기를 혼동하는 광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달력을 파는 퇴직자들, 군인이 되고자 하는 의욕적인 젊은이들, 

그리고 심판의 날이 왔다고 알리는 젊은이들을 만났다. 

터미널 식당에 앉아 있는 약혼한 커플들, 견습 수리공들, 축구 선수들, 불법 담배를 파는 장사꾼들, 

살인 청부업자들, 이제 막 교사직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그

리고 극장 지배인들과 밥을 먹었다. 

그들은 수백 명의 사람들과 엉킨 상태로 대기실에서, 

버스 좌석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이런 문장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얼마 후 나는 친한 형과 전국 여행을 떠났다. 이 문장들은 여행 중에 살아 움직였고, 타인들이 전해주는 무성의한 인생 교훈보다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해 주었다.



깊은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며 이 나라가 얼마나 큰지 몸으로 느꼈고, 지리산 자락이 어두워질 때 쯤 밀려오는 알 수 없는 두려움 자체에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술취해 여기저기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겉옷은 신사였던 한 남자를 보며 나도 오르한 파묵이 쓴 새로운 인생의 주인공처럼 미소를 지었다.

​​

반복되는 일상에서 윤기를 잃어버린,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매일 지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나 자신이 책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 여행이라는 게 작가가 쓴 수많은 문장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껴야 하는 힐링의 시간이 아니던가.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을 보면 우리가 왜 여행을 떠나야 하는지 알게 된다. 우리가 지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관계에서 오는 압박'이다. 그런 주변에 널린 인간 관계를 잠시 떠나, 새로운 인생들을 바라볼 수 있는 여행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떠나는 것이다.

​​

크고 작은 부딪힘 없이, 냉랭하게 식은 관계 회복에 대한 부담도 없이, 사람들의 사는 삶을 바라보는 것. 여행 중 만나 이뤄지는 작은 대화들까지 우리에게 힐링을 준다. 그런 관계들은 쉽게 헤어지고 쉽게 잊을 수 있으며, 대책없이 떠나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 단지, 그 장소에서 '그는 그랬어'라는 작은 미소만 내게 남을 뿐. 그런 여행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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