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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모스크바 공항을 경유하다가 쓴 글

by 하 루 살 이 201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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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여유. 얼마만에 느끼는 건가. 


이스라엘을 다녀오고 나서 2주간 주말도 없이 일했다.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바로 참여했다. 회사 상사가 내가 프로젝트 기간에 휴가를 갔다는 이유로 일을 시킨 건 아니다. 프로젝트 도중 여행을 가버린 탓에 흐름이 끊어져 나 혼자 힘들어했을 뿐이다. 


휴가 전에 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휴가는 몇 달 전부터 잡아놨다. 그래서 프로젝트 중간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복귀했을 때 시차 적응 여유없이 일에 착수했다. 여기저기 숨 가쁘게 돌아다녔다. 




다시 찾아온 주말의 여유. 


2주 전 나는 이스라엘 여행을 끝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을 경유했다. 대기 시간은 8시간이었다. 8시간. 누군가에게 끔찍하게 지루한 시간일 수 있다. 


나는 반대였다. 설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 그토록 그리웠다. 머리를 싸매고 기사를 쓰는 것에서 잠시 떠나있고 싶었다. 아무에게서도 연락을 받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시간 말이다. 


이런 여유가 그리웠다. 다시 돌아왔을 때 두려웠다. 여유는 이스라엘보다 멀리 있었다. 너무나 두렵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보낸 시간. 

토요일 저녁 해가 진 지금, 스마트폰이 울릴까 불안하다. 오늘도 오전 9시부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나는 국장이 들어올 필요가 없다하여 카페에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폭풍 전야가 심신을 지치게 한다. 


너무 끔찍하게 불안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 카페에 앉아 있다. 이 불안.. 


현대인은 불행하다. 우린 노예로 전락하는 중이다. 노예가 노예를 억압하는 구조 속에서 말이다. 자본주의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마르크스는 이 점을 강조했으나 그때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그의 비판은 감성에 젖은 소리였던가. 그는 단지 예언가였을 지 모른다. 자본은 현대인 위에서 군림한다. 


모스크바 공항

모스크바 공항 5번 게이트를 통해 비행기를 탈 경우, 이렇게 공항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잠시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우린 여행을 한다. 그 갈망이 우릴 떠나게 한다. 막대한 돈을 써도 아깝지 않다. 그런 장소를 찾아 나선다. 여행은 그래서 어디든 좋다. 여행지에서 우린 우리를 발견하고, 돌아본다. 일종의 철학하는 시간이다. 현실에선 어렵다. 여유가 없고 철학할 용기도 없다. 현실을 봐야 하니까. 익숙함을 낯설 게 봐야 하니까. 스마트폰을 끌 자신이 없으니까.


모스크바 공항에서의 8시간. 스마트폰이 어떤 경우에도 울릴 수 없는 시간이다. 스마트폰은 그저 작은 컴퓨터에 불과하다. 지루하면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는다. 이것 저것 이유 없이 그저 떠오르는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않는다. 아무도 내게 연락할 수 없다. 북방 땅 어느 곳에서 나는 혼자다. 




공항 창가에 눈이 부딪히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처럼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그들에게 나는 낯선 외국인이다. 다시 못 볼 타인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알아야 할 이유없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주변 사물은 모든 낯설다. 그 낯선 것들을 굳이 알려고 들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정보를 찾고, 논리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 없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 


공항은 무가치한 가치가 깃든 곳이다. 스쳐 지나가도 되는 대상만이 존재한다. 우린 그곳에서 예민했던 감정이 풀어진다. 


공항은 관계 설정의 염려에서 우리를 잠시 놓아준다. 게이트 넘버와 시간만 잘 확인하면 된다. 그 나머지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람과 사물 모두 그렇다. 무가치한 가치들이 각자 있어야 할 장소에 놓을 뿐이다. 보이는 모든 것에 강요가 없다. 이 비현실적 상황이 공항 안에 있다. 


일상은 갈수록 바빠진다. 지식의 전달 속도는 빨라진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벗어나야 한다. 공항 경유지는 도피성이다. 모스크바 공항이 지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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