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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

구원파 정말 이단인가

by 하 루 살 이 202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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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2~23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is by faith of Jesus Christ unto all upon all them that believe: for there is no difference: for all have sinned, and come short of the glory of God; being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is in Christ Jesus.  Romans 3:22~23

 

 

이 말씀에 대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명심하라. 이 구절이 이 편지(로마서)와 성경 전체의 핵심이요, 중심이다. 

마르틴 루터

 

 

 

 

구원파가 이단인가?

구원파는 무엇이고 이단은 무엇인가. 구원파라 함은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계열을 말한다. 그럼 이단은 무엇인가.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정통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장에 대하여 정통자측에서 부르는 배타적 호칭'을 이단이라 설명한다. 정통 '교리'에 벗어나는 것을 누군가(정통자)가 그렇다고 하면 이단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나같이 성경만을 중시하는 자에겐 다음과 같이 들린다. 받아들일 필요도 없는 주장. 누가 정통자란 말인가.

 

바울은 분명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빌 3:18)'로 행하는 자들에 대해 말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율법에 속하려는 것에 대한 강한 질타가 이어졌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자유케 되는 도를 거부하고 율법의 행위를 덧붙이려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비판과 비난이었다. 굳이 '이단'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면 이런 자들을 지칭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파가 과연 이단인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할 게 있.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만 생각해보자. 

 

 


깨달음도 '믿음'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방식이라면 왜 문제인가

 

일반교회가 비판하는 것은 구원파가 말하는 구원의 기준일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게 됨에 대한 결과가 곧 구원이라는 점. 하지만 이것을 어느 기독교인이 부정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즉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엡 2:8)'라는 이 위대한 선포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이를 통해 '영원히 온전케(히 10:14)'된 것을 어떻게 '영원히'를 빼고 설명할 수 있는가.  

 

구원파는 믿음에 강조한다. 구원받으라는 말이나, 깨달으라는 말이나, 믿으라는 말이나 그들에겐 똑같은 표현이다. 그래서 구원파라 불리는 것이다. 바울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을 강조한 것과 다른가? 대한민국에서 구원파라는 이름으로 행동에 나선 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을 말했다면 무엇이 기독교의 정통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일반교회에선 구원파가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고 비난한다. 내가 볼 땐 이 또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깨달음이든 이해함이든 믿어짐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이라면 문제가 될 게 없다. 생각해보라. '믿다'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표현이다. '믿는다'라는 신뢰의 인식은 형태로 나타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서류로 남아 소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믿긴 믿는 건가'하는 의심도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원파에선 깨달음이라는 좀 그럴듯한 표현을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쉬우라고. 그런 표현을 쓴 것쯤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워짐'을 설파하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이단이라고 밀어붙이면 나는 누가 진짜 이단인지 모르겠다. 

 

 


믿음이 온 후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이 말이 틀렸는가? 

일반교회와 구원파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죄를 사해 달라는 반복된 회개의 기도'에 대해 성경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이 드는가. 

 

로마서를 비롯해 바울이 쓴 서신들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에 대해, 곧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가 속량을 얻은 것 말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 말이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 된 것,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 이 위대한 성경의 표현들을 읽고도 아직도 '속량해 주소서', '믿음을 주소서', '죄를 사해주소서'라고 말한다면?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그런 자들은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양심을 두고 두려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

 

나는 믿음이 온 후로 그 믿음이 취소된다는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다. 믿음이 온 후로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본 적이 없다. 오직 믿음에 대한 강한 말씀의 표현들만 나는 마음에 받아들였고 그렇게 믿고 있다. 오직 피로써 속죄된다는 진리의 말씀을 앞에 두고서 나는 그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서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믿음 없는 자들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살다보면 육체의 욕심에 의해 저질러지는 온갖 더럽고 추한 생각과 행동으로 양심의 괴로움을 받기 마련이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나의 또 다른 양심과 다툴 수밖에 없다.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또다시 '죄를 사해주소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믿음을 주신 분을 위해 옳지 않은 일을 한 것이 부끄럽습니다'라는 회개의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로마서 7장과 8장을 기억하면 이해가 쉽지 않은가. 구원파는 여기에서 '자백'을 말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요한1서에 나오는 표현이니까. 이것까지 이단이라 할 수 있는가. 

 

내가 알기론 세 종류의 구원파 어디에서도 '구원 받았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구원 받았다면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갈 5:21)'라고 가르치며, 더욱 말씀대로 살 것을 가르칠 뿐이라 알고 있다. 이것까지 이단이라고 지적할 것인가. 누가 이단인가. 

 

 

칼 바르트 Karl barth

 


종말론을 이야기하면 이단인가?

 

나는 역사의 종말, 시간의 종말, 곧 새 예루살렘의 도래를 거부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하고 싶다. 종말을 이야기하지 않고 부흥회를 연다면 나는 그곳을 이단 집합소라 말하고 싶다. 요한계시록을 거부한다면 그 자는 이단이다. 구원파 어디에서도 종말론이 없다라고 하지 않는다. 종말론을 말하지 않는다면, 구원파든 정통파든 모두 이단이다. 하지만 구원파는 지금 종말론을 이야기한다고 이단 소리를 듣고 있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더 나아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확증된, 곧 그것을 믿음으로 가능한 절대적 확증을 거부하면 이단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화해와 긍률과 신실하심은 지속적이다. 변함이 없고, 영원하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또한 그러하듯,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다. 딴 소리하지 말자. 이단 놀이하지 말자. 구원파나 정통 교파나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한 말씀이다. 

 

 

곧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됐고, 여기에 차별이 없다는 말씀을 우린 전파해야 한다. 루터의 말대로 이 말씀이 곧 로마서의 핵심이며 성경의 중심이다. 이 글이 구원파의 글이라고 매도 한다면 나도 구원파라 말하겠다. 소속됨 없이 말이다. 나와 같은 믿음의 간증을 가진 자들이라면 그들도 구원파라 말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의 무죄 선포를 분명히 말한다. 칼 바르트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정확하게 십자가 저편에서 시작되는 나라'다. 곧 이전과 이후가 구분된 나라다. 개인에게 이 구분은 오직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무죄 판결의 보호막 아래서(칼 바르트 로마서 p.387)' 우리는 진짜 자유를 얻었다. 이외에 무엇을 말하려는가. 그 믿음을 말한다면 이단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해 주신 사람들이다. 

 

칼 바르트

 

 

 

하나님의 선언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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