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태치먼트'를 봤다.
디태치먼트 Detachment 란 무심함. 거리를 둠 이라는 뜻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어떻게 남까지 다 챙기면서 살 수 있을까, 남의 인생에 끼어들 여력도 용기도, 관심도 없다. 라는 생각. 그 생각이 바로 디태치먼트다.
이 영화는 그 생각의 현장을 '교실'에서 찾았다. 그저 한 교시 대충 보내고, 또 보내고, 그렇게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다음날 어제 했던 일을 반복하고. 교실 안에는 의미도, 의무도, 책임도 없다. 오직 하루 먹고 사는 문제 속에서 모든 교사들이 그렇게 하루를 보낼 뿐이다.
학살.
이 영화 중간에 나타나는 나치의 영웅 히틀러. 그리고 그의 열광적인 연설. 그때 히틀러의 열정에 빠진 많은 독일 국민은 남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는 자들이 된다. 누군가의 죽음에 무관심한 시민은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한 영웅의 학살에 응원했고 그리고 끝내 동참했다.
지금은 어떨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이 돌아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남들로부터 멀어지고 남들과 최대한 거리두기를 한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는 현장을 눈 앞에 보고 있어도 우리는 우리 일이 아닌 이상 거들떠보지 않는다. 왜냐. 안 그래도 힘들기 때문에. 안 그래도 내 갈 길 가기도 벅찬데. 남의 일에 끼어들어 내 길에서 이탈이라도 하면 어쩔려고.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 멀고 귀 먼 인간들로 변해 간다. 모두가 눈 뜬 봉사가 되고 영혼의 장애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을 때, 그런 돌아버린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결국 어떤 지적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자신을 방탕과 방임에 내려놓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모르는, 감각 없는 자 되어 세상으로 휩쓸려 간다. 이 세상은 점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로 채워진 곳으로 변해가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자녀가 올바른 정신력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양극화란 다른 것이 아니다. 정신적 양극화는 사람들 사이의 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기회의 박탈보다 더 무서운 영혼의 파괴를 가져다 준다. 정신적 박탈감 속에선 야망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야망이 없고 희망도 없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느낄 수 없는 자가 되어서 사회에 내보내니지니까.
누가 과연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건가. 아이들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는데도 보고만 있는 사람들. 그리고 제 살 길 찾기에 바쁜 사회인들. 언젠가 이 사회가 실패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영화 디태치먼트를 보면 정말 숨을 쉬기 힘들다는 걸 느낀다. 한 영화 평론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은 잔인하다."
현실을 표현하는 기법이 이토록 직설적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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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기 관련 포스팅(클릭 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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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비록 '교육의 장'에서 표현된 영화이겠지만, 이것은 되려 무관심과 거리두기는 교실 외에서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고, 그 일어나는 수준은 굉장히 정교하고 치밀할 것이라고 숨죽여 경고한다. 디태치먼트, 무관심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전달한다.
오랜만에 숨이 막히는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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