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추고, 평정을 되찾기를 유도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마주하는 것은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과 유사하다. 그것은 인조적인 신전이나 화법이 뛰어난 연설가 없이도 완벽하게 진행되는, 지극히 사적이 미사와도 같다.
밀란 크니작
나는 몇 년 전 체코 프라하에서 밀란 크니작 전 프라하 국립미술관 총관장을 만났다.
그를 통해 유병언 회장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유병언 회장이 찍은 사진 가치에 대해 의심의 여지없이 높은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고 놀라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한국에선 그가 찍은 사진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법원은 아해 사진이 가치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그러자 밀란 크니작 관장은 내게 물었다.
지금이 중세시대인가. 법원이 그렇게 판단 내리면 가치가 없는 것이 되는가.
https://ko.wikipedia.org/wiki/%EB%B0%80%EB%9E%80_%ED%81%AC%EB%8B%88%EC%9E%91
밀란 크니작 관장은 1시간가량 이어진 대화를 끝낸 뒤 본인이 쓴 책 한 권 내게 선물했다. 이 책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30인'을 그리고, 설명을 남긴 책이다. 그는 30인 중 마지막으로 아해를 그렸다고. 이 책자는 2015년에 나왔다. 체코에서 출판됐는지는 모르지만, 책 형태로 봐선 출판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책을 여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과연 유병언 회장의 사진이 가치 없는 것인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조차 꺼려지는 것이 현실일까 안타까울 뿐이다.
크니작 관장은 아해 유병언의 그림을 그리며 그의 호 AHAE를 그의 가슴팍에 명확히 적어 넣었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아해(Ahae)는 고대 말로 아이를 뜻한다. 아해는 태초의 것을 발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택했다. 아해만큼 유능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한국인 사업가, 화가, 사진작가, 시인, 사상가, 목사 등으로 인생 거의 모든 것을 성취했다. 그는 사람이 자신의 주변 환경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략) 나는 아해를 본 적이 없다. 그의 사진 몇 장만 봤을 뿐이지만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젊었을 때의 그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고, 어른이 되어서는 평범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를 불확실한 나이에 그렸다. 무색의 머리카락과 대조적으로 더 젊은 얼굴의 초상화에서 아해를 본다.
밀란 크니작 관장은 이 책 서문에서 30인을 이야기하며 아해 유병언에 대해 "최근 세상을 떠난 아해는 내 생각에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모두가 유병언에게 등을 돌릴 때 크니작 관장은 그러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를 본 적이 없다는 말에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보지 않았기에 더 잘 보인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예수를 본 적 없는 바울이 예수를 더욱 잘 알고 서신들을 썼던 것처럼 말이다. 시각은 오히려 오해를 남기고, 대상을 정확히 보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일 수 있다.
아해 사진 도록에 있는 크니작 관장은 글에는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나는 그 단어에 집중했다. 단순하고 평범하기에 의문과 비난의 시선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흔히 아해 사진에 대해 '저런 사진을 누가 못 찍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누구나 찍을 수 있는 평범함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많은 사진들은 어떨 땐 너무 자극적이지 않던가. 파괴적이지 않던가.
하지만 자연은 소박하고 단순한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진리는 언제나 평범함 가운데 있다. 하지만 너무 당연해 보이기에 쉽게 무시당하고 지나침을 당한다. 유병언은 그것을 발견했고, 찍고 싶었던 것이다.
밀란 크니작도 그 점을 설명한다.
'평범'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평범하고 일상적 세상은 세심히 관찰해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아해는 섬세한 관찰자다. 창 반대편에 펼쳐진 세상 속에 나타나 본질적인 변화를 잡아내기 위해 열정을 보여줬다. 아해 사진은 유치하거나 허황된 슬로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이 세상이 얼마나 섬세하고 멋지고 소박하면서 대담하며, 그리고 우아한지 보여줄 뿐이다.
나는 유병언과 관련한 글들을 쓰고 있다. 그와 관련한 논란을 살펴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나는 죽을 때까지 찾을 것이다. 널려있는 팩트 뒤에 숨은 진실을 찾고 싶다. 진실은 팩트 너머에 있는 것이니까.
나는 크니작 관장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아해가 옆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그 말을 진지하게 듣더니 그는 대답했다.
Nothing.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다는 말이었다. 사진으로 충분한 대화가 오갔음을 의미했다. 언어는 의미와 뜻이 전달되면 그 역할을 다 했고, 불필요해지는 형상이 된다라는 동양 고전의 말을 나는 떠올렸다. 침묵이 때론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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