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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2

가이사랴 로마식 극장과 전차장 앞에서 텔아비브 욥바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가이사랴 수로를 보러 차를 몰고 지중해 해변을 달렸다. 놀랐던 것은 당시 시간이 오전 7시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로 들어오는 반대편 큰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텔아비브를 빠져나가는 도로는 다행히 한산했다. 이 도로는 서울로 치면 외곽도로나, 일산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오는 강변 도로쯤 됐다. 그 도로를 달리며, 높은 현대식 빌딩을 보며, 그리고 이른 시간부터 꽉 막힌 도로를 보며 '이스라엘도, 유대인도 생활면에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선민의 삶은 이방인의 상식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 곳에 있었다. 가이사랴에는 로마식 수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차를 타고 15분 정도만 더 가면 그리스 연극이 펼쳐졌던 거대한 로마식 극장이 나왔다. 고.. 2017. 4. 10.
이스라엘 가이사랴 수로를 가다 거대한 수로가 나타났다. 2천년의 세월을 견딘 수로는 해변가에서 끊어졌다. 십자군 시대였던 1099년부터 1260년까지 무려 1천년이나 사람들에게 사용됐던 헤롯 수로. 가이사랴 지중해변의 거센 바람 앞에서 이제는 1천 년간 잠들어 있는 고대 로마식 수로를 직접 보고 만지면서 나는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가이사랴는 한 때 유대 수도이기도 했다. 그만큼 번성했던 도시였다. 주후 69년 베스파시아누스는 가이사랴를 유대의 수도로 삼았다. 주후 70년 유대 지역과 예루살렘은 파괴당한다. 티투스 장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랴에서는 검투사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또 가이사랴에는 샘이 많지 않다고 한다. 과거부터 그랬다. 그래서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헤롯이 도수교를 건설했다. 그 길이만 16km에 달한.. 2017.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