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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스라엘 여행

이스라엘 텔아비브 항구에서

by 하 루 살 이 2017.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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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에 도착했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만큼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고통과 희망이 뒤섞인 역사를 가졌다. 이 도시는 이스라엘인에게 사랑받는다. 특별한 도시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초대 수상 다비드 벤 구리온이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한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다. 이방 민족에 속한 땅이었다. 


유대인은 2000년 동안 나라없이 떠돌았다. 2000년을 쉽게 가늠하기란 어렵다. 막막한 공간같은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유대인은 혹독한 역사를 견뎌야 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의도를 가지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독일 민족은 유대인을 말살하려 했다. 나치당만 그랬다고 말할 수 없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독일 민족은 나치 히틀러에 의해 조종 당했다고만 볼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독일 민족은 주체적으로 유대인 말살에 동참했다. 책임을 회피했다면 사과도 없었을 것이다. 독일 민족 모두 아는 사실이다. 


유대 민족은 "우리 조상의 땅으로 가자"라는 염원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시오니즘을 텔아비브에서 실천한다. 땅을 사고 경작한다. 한 손엔 쟁기을 들었다. 다른 손엔 총이 있었다. 남녀 노소 구분이 없었다. 유대 민족이 살 땅에 대한 간구로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만의 나라'를 세우기 전부터 '유대인만의 도시'를 만들었다. 


사진설명 새벽, 숙소에 들어가지 못해 하룻밤 밖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자 여기가 욥바(Jaffa) 항구라는 걸 알았다. 의도치 않게 베드로가 광주리 환상을 봤다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이었다. 



유대인은 텔아비브를 통해 이스라엘 건국을 꿈꿨다. 독립을 발표한 후 수많은 피난민이 텔아비브에 몰려들었다. 


나는 이스라엘에 도착한 첫 날 텔아비브로 바로 향했다. 그곳에 숙소를 예약했다. 벤 구리온 공항에서 렌터카를 받고 나오자 밤이었다. 자정을 넘었다. 가로등이 새벽 도로를 비췄다. 간간히 덤프트럭이 무섭게 내달렸다. 내가 받은 차는 반자동이었다. 반자동 차는 처음이었다. 고속도로로 들어섰음에도 속도가 나지 않아 당황했다. 속도를 내기 위해선 변속기를 바꿔줘야 했다. 


이스라엘은 나에게 동경의 나라다. 어릴적부터 책장에 꽂혀있는 이스라엘 여행기를 자주 봤다. 지중해를 마주한 텔아비브 도시를 신기해했다. 13살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봤다. 어린 나에겐 충격이었다. 울부짖는 유대 어머니들이 자기 자녀들이 독일군 트럭에 실려 떠나는 장면을 보고 소리치며 뛰어오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후 홀로코스트 역사를 찾아 다녔다. 프레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자세히 읽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여러번 읽었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를 읽고 기자를 꿈꿨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마지막에 나는 '그 나라에 가자'고 매번 계획했다. 


처음 그 나라에 도착했을 때 역시 이스라엘은 낯선 나라였다. 그렇게 공부하고 상상했던 나라였는데..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 같았다. 적응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렌터카 직원이 내 앞에서 히브리어로 대화를 나누더니 내 눈치를 보고 영어로 질문했다. 이들만의 세상이 명확했다. 낯선 이에게 의심을 품고 봐야하는 게 이들의 숙명이라고 들었다.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심한 고독감이다. 컴컴한 어둠이 엄습하는 두려움이다. 첫날 밤 나는 밖에서 지새워야 했다. 다음날부터 숙소에 체크인이 가능했다. 밤에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면 어쩌나. 새벽 나는 내비게이션 하나에 의지한 채, 이 차 하나만 믿고서 도로를 달렸다. 이것만이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반자동에 나를 지켜줄 그것조차 내겐 너무나 낯선 존재로 돌변한 기분이었다. 믿지 못할 존재를 믿어야 하는 처지였다. 언제나 배신하고미련없이 떠날 존재.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근육이 아파왔다. 세상에서 한 때 가장 불행했던 민족의 나라. 나는 그들이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처량하고 처절한 기분을 느꼈다. 검은 도로. 제대로 여행하는 중이었다. 


나는 첫날 새벽 아무 카페나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텔아비브에는 카페 하나 없었다. 24시간 개념이 그 나라에는 없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공원? 딱히 보이지 않았다. 정보가 많지 않았다. 아무데나 차를 대면 위험할 것 같았다. 



새벽, 차를 대고 욥바 항구를 돌아다녔었다. 당시에는 여기가 욥바 항구 주변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냥 텔아비브 도시에 있는 이름 모를 동네라고 생각했다. 


텔아비브는 왜 그렇게 미로같은지. 도로는 얽히고 섥혔다. 내가 예상했던 신도시가 아니었다. 텔아비브는 관광 도시가 아니었다. 새벽에 특히 그랬다. 본심을 드러낸 사기꾼 같아 보였다. 여길 혼자 오다니.. 그 새벽에 후회했다. 


들고양이가 도로 구석에 돌아다녔다. 

누군가가 그렸을 거친 낙서가 벽면에 보였다. 

건들건들 돌아다니는 남자들. 내 차랑 불빛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모를 어딘가에서 잠시 차를 정차하고 내렸다. 텔아비브 땅이 무겁게 느껴졌다. 

긴 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다 휴게소 같은 곳에 들릴 때 느끼는 묵직한 땅의 기분이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내가 기존에 거닐었던 땅과 완전히 달랐다. 




공기가 찼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진정을 찾고 싶었다. 내가 온 곳이 이스라엘이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겨울처럼 찬 공기가 엄습하자 그런 생각이 커졌다. 


당일 텔아비브는 바람조차 없는 조용한 도시였다. 정막이 가득했다.이 도시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거친 사막에 선 기분이었다. 스마트폰까지 꺼졌다면 절망했을 것이다. 다행히 50%정도 남았다. 


어느 곳에 도착했다. 정말 '어느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파도 소리가 들었다. 해변가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변에 가자 거대한 검은 존재가 나타났다. 검은 바다가 무서웠다. 바다 근처 교회가 있었다. 조용했다. 그나마 안심을 했던 것은 차 댈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무대나 차를 대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새벽 4시였다. '여기에서 아침을 맞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자 피로가 몰려왔다. 너무 추워 잠이나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몇 번을 깼다. 너무 추워 중간에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었다. 다시 끄면 찬 기운이 코끝에 느껴졌다. 그렇게 새벽을 보냈다. 어느 순간 동쪽 하늘이 밝아왔다. 기지개를 켰다. 어지럼증이 핑 돌았다. 주변을 돌아봐야 겠다 싶었다. 명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었다. 


그때 정신이 들었는지 구글 지도를 켰다. 욥바(Jaffa) 항구에 와있었구나.


새벽에 봤던 교회는 베드로가 광주리 환상을 봤다는 장소였다. 요나가 신의 명을 받지 않고 도망갈 때 이 욥바 항구를 이용했다. 나는 바다를 보고 싶어 걸었다. 거대한 지중해가 나타났다. 텔아비브 해안이 보였다. 


아..어릴 적부터 이스라엘 책자에서 봤던 그 텔아비브였다. 그 모습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미소를 지었다. '이번 여행, 시작이 좋구나..'

여행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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