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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스라엘 여행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그 잔잔함에 관하여

by 하 루 살 이 2017.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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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갈릴리에 형성된 가장 큰 도시 티베리아(성경엔 디베랴로 나옴)에 도착했다. 갈릴리 호수를 끼고 형성된 도시 가운데 가장 큰 도시다. 이 도시를 시작으로 가버나움과 고라신(예수께서 저주 내리신 곳), 벳새다를 둘러봤다. 


그때 '갈릴리 호수를 한바퀴 돌아볼까?'하는 얼굴에 미소 지어지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거라사 쪽으로 차를 몰았다. 갈릴리 호숫가에 만들어진 도로를 달릴 때 나는 황홀함을 만끽했다. 렌트카로 이스라엘을 여행하지 않는다면 누릴 수 없는 기쁨이었다. 


아래 동영상은 거라사 지방에서 찍은 영상이다. 빨간 동그라미가 영상을 찍은 장소다. 거라사는 성경에서도 특별한 장소다. 예수께서 배 타고 가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막 5:1)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눅 8:26)


이곳에서 예수는 군대 귀신들린 자를 만나신다. 예수는 귀신들린 자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고 그 귀신 들린 자는 예수께 "군대"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많은 귀신이 들렸다는 뜻이다. 이 귀신 들린 자는 예수께 무저갱에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그 곳에 마침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어 거기로 들어가라고 하시기를 간구한다. 이에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그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간다. 그 돼지 떼는 곧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한다. 지금 보이는 영상 속 비탈이 바로 거라사인의 지방인 것이다. 




갈릴리 호수는 말할 수 없는 고요한 호수였다. 주변 마을과 들판들도 호수의 분위기를 닮아 있었다. 2000년 전 예수께서 요동치는 바다를 향해 "잔잔하라"고 명하신 성경이 떠올랐다. 이 말씀을 하신 후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서른 두 살이 된 나는 이제서야 이 호수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멀리 보이는 도시가 티베리아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모든 게 천천히 움직이는 듯한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한다.





티베리아에 도착한 후 베드로 성당에 차를 대고 호수 가까이 가봤다. 호수는 죽어있는 듯 잔잔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그랬듯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티베리아를 조금 벗어나자 호수를 기점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졌다. 






바로 이 곳이 '팔복교회(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장소. 예수께서 이 들판에서 사람들에게 팔복에 관해 설교하셨다고 한다)'. 특히 이 장소는 예수가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곳으로도 알려진다. 그럴만한 들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활하고 사람들이 모이고 싶은 아름다운 들판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버나움에 도착했다. 갈릴리 바다 북쪽 해변에 위치한 가버나움은 예수의 갈릴리 성역의 중심지였다(마 9:1~2; 막 2:1~5). 예수는 이 곳에서 많은 표적과 기적을 행하셨다. 

이 지역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으로 이방인들과 유대 두 지파가 섞여서 살았던 곳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가버나움을 '본 동네'라고 부를 만큼 전도에 집중하셨던 곳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다.(마4:12-22). 세관에서 일하던 세리 마태도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를 자기 집에 초대한다(마9:9). 가버나움에 주둔한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예수를 찾아와 그 사랑하는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사건도 있었다(마8:5-13, 눅7:1-10). 예수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도 고치신다(마8:14-17, 막1:29-31). 중풍병자를 네 명이 침상 채 들고와 사람들이 많자 그 집 지붕을 뚫고 들어가 네 줄로 내리달아 예수에게로 데리고 온 아름다운 이야기도 가버나움에서 펼쳐진다(막 2:1 ~ 12).




가버나움 유적지는 5세겔(1500원)을 주면 들어갈 수 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여기가 그 유명한 '고라신'이다.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눅10:13-15)

이 말씀처럼 고라신은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였다.






고라신 주변으로는 푸른 들판이 펼쳐졌다. 유독 고라신만 황량한 폐허로 남아있었다. 





고라신에도 이렇게 큰 연자맷돌이 있었다. 






갈릴리 호수 주변을 걷다보면 바쁜 삶만 추구해온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모든 게 느리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생계를 위해 무작정 빠쁘게 살아온 나.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삶과 관련한 고민들이 나와 멀어져 있었다.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원초적 질문에 답할 수 없었던 현실. 그 답을 찾기에 멀리만 살아온 건 아닐런지. 


갈릴리는 이렇듯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 옛날 고기 잡는 일에 집중하던 베드로과 세관 일에 열중했던 마태. 이들에게 나타난 예수를 기억해 본다. 초목이 펼쳐진 갈릴리 들판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예수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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