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가이사랴 수로를 보러 차를 몰고 지중해 해변을 달렸다.
놀랐던 것은 당시 시간이 오전 7시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로 들어오는 반대편 큰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텔아비브를 빠져나가는 도로는 다행히 한산했다. 이 도로는 서울로 치면 외곽도로나, 일산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오는 강변 도로쯤 됐다. 그 도로를 달리며, 높은 현대식 빌딩을 보며, 그리고 이른 시간부터 꽉 막힌 도로를 보며 '이스라엘도, 유대인도 생활면에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선민의 삶은 이방인의 상식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 곳에 있었다.
가이사랴에는 로마식 수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차를 타고 15분 정도만 더 가면 그리스 연극이 펼쳐졌던 거대한 로마식 극장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이 야외 극장에는 한 번에 3500명이나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역사학자 요세푸스도 이 극장을 언급한 바 있다. 지금도 이곳에선 야외 행사가 펼쳐지는 걸로 알고 있다.
극장 근처에는 기독교인에게 감동을 주는 장소가 있다.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사도행전 9: 30
바울 사도는 가이사랴에서 벨릭소 총독과 베스도 총독 밑에서 2년 동안 가이사랴에 머물렀다.(행 23장, 24장, 25장)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사도는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을 것을 요청한다. 그 장소가 가이사랴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과 함께 이곳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한다.
가이사랴는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이방인인인 가이사랴의 로마부대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곳이기도 하다(행 10:1∼31).
고대 극장 주변에는 당시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멀리 보이는 항구에서 바울 사도가 배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고 한다 .
멀리 보이는 곳이 전차 경주장이다.
경주장 한 가운데 서서..
로마식 극장 옆에는 전차 경주장이 있었다. 거대하게 펼쳐진 전차장을 나는 정 중앙에 서서 바라봤다. 소리없는 전차 경주를 느껴보고자 했다.
이스라엘 여행이 좋은 점이 있다.
이스라엘 어딜 가든 나는 유적지를 만지고 느낄 수 있었다.
유대인은 유적지를 유리에 가둬놓고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게 놔두질 않는다.
그들은 성경을 대하듯 유적지를 재생했다. 직접 만지고 느끼게 했다. 자신만의 언어로 과거를 해석하게 했다.
그 점이 부러웠다. 우리나라를 알기에 더욱 부러웠다.
우리나라 유적지엔 목재 건물이 많은 탓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다른 걸 할 수 있던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체험이 있던가. 모든 게 막혀 있다. 멀리서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과거는 우리와 격리된 곳에 놓여 있을 뿐이다.
유대인은 그걸 피하고 싶어한 민족이다.
나는 로마식 극장에 오를 수 있었다. 수로 위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유대인이 과거와 함께 살았다.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있었다.
과거를 아는 민족이었다. 역사에서 배우는 민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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