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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by 하 루 살 이 2016.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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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소설은 참 특이하다. 소설 줄거리가 돋보이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독자 입장에서 참 애매함을 느끼고 그만큼 소설이 진행 될수록 어려워지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소설도 그렇다. 하나같이 주인공 일상이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된다. 굳이 안 써도 되는 주인공의 시시콜콜한 행동이 다 적혀있다보니, 마치 옆에서 그 사람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서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다. 재밌는 줄거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사실 흔해빠진 타인들의 사소한 행동에 관심이 없는 게 우리들 아니었던가.


소설도 그렇다. 무미건조한 주인공 행동은 즐거움보다 지겨움을 안겨준다. 읽는데 주인공 행동이 걸림돌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도. 페터 한트케는 '페널티킬 앞에 선 골기퍼의 불안'에서 그런 걸림돌을 끝까지 대놓고 보여줄 심성으로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이 책의 제목에 매료되고 내용에 실망한 나였다. 중간에 포기할까 이 고민 저 고민 중이었다. 당시 이 소설을 잡은 나는 그랬다. 그래도 끝까지 읽고 책장 아무데나 처박아 두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다시 이 책을 잡은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펼친 그의 책에 끄적거린 낙서 한 장이 나왔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당시 나는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서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느꼈던 것 같다. 그 여유를 이 책과 함께 하려 했다. 그런데 이런... 주인공의 아무 쓸데 없는 단순한 행동들만 나열된 소설이라니.. 이런 생각으로 읽고 또 읽다 소설 주인공의 특이한 행동에 질리다 못한 나. 그림을 그려도 꼭 주인공을 닮은 얼굴을 그렸던 것이다.

 

오랜만에 이 책을 펼쳐보고 찾은 그림에서 나는, '어라, 눈썹을 안 그렸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에서 주인공 요제프 블로흐의 정신병 때문이었을까.


불안증세, 과민반응,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그리고 우울증을 붙여도 과하다 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건축 공사장에 늦게 출근한 블로흐. 현장 감독이 흘끗 올려다본 것으로 해고를 지레짐작하고 일터를 떠나버렸다.

 

영화 매표소 여직원과 일요일 밤을 같이 보낸 뒤 월요일 아침 그녀의 한 마디에 목졸라 살해한다. 그녀가 질문은 일상에 속한 것이다.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은 열심히 방황한다. 경찰의 추격을 받으면서.

 

주인공의 행동과 제목을 일치시켜볼 수 있겠다.

 

다들 열심히 공을 쫓아 움직이는데, 하릴없이 놀고 있는 반대편 골기퍼.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듣지 않는 외침인데, 그것도 허공에 충만한 군중들의 함성에 사라진다. 공이 언제 올지 몰라 이리저리 잘도 움직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관심 없다. 그런 남자의 행동.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주인공 블로흐도 그랬다. 일하는 시간에 늦게 출근하고 그것도 모자라 현장 감독의 눈빛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 해고라고 단정짓고 일터를 빠져나와 할 짓이라고는 아무도 관심없는 몸트림이다. 길거리에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모두가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 시간, 무의미한 자유에서 그는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환영 못 받을 무직자다.

 

이것저것 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무직자.

불안과 공포는 그렇게 다가온다. 인간이 직장 노예라는 것. 자기 혼자만의 자유인이 된다는 것. 무서운 일이다.

적당히 숨 쉴 수 있는 환경의 노예들이니까. 누구도 노예가 안 될 이유가 없는 이 세상이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결국 주인공에게는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몰려왔다. 그는 살인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있다고 느꼈다. 불안과 블로흐는 같았다. 


소설 마무리는 간단하다. 가볍고, 더할나위 없이 불안하다. 아무런 결론이 없어서다.

 

 

 


나는 그의 소설을 다시 찾았다. 늦은 밤 중었다. 몇 년 만이다. 일을 마치고 온 나는 강압적은 교훈 넘치는 세상에서 벗어나자마자 집 귀퉁이에 주저앉았고 말았다. 책장으로 흘낏 눈을 돌려 페터 한트케의 얼굴이 담긴 책을 봤다. 불안증세가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책을 펼쳐 교훈 없는 주인공의 행동을 따라갔다. 문고리 여는 장면, 음반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 더 이상 오가는 사람이 없는 길을 걷는 주인공의 무표정한 얼굴을 혼자 상상하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는 행동 파편.  오해와 착각, 소통이 불가능한 주인공이 웃겼다. 그런 그와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더 웃겼다.


그와 내가 닮아 있었다. 직장생활인 걸 모를 때 그렇게 어렵던 책이 이제는 읽기 편하게 된 것이다. 


불안의 심상으로 나는 소설을 계속 읽어내려갔다. 두번 읽은 이 책을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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