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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시 보는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by 하 루 살 이 2018.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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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리 스콧 감독의 명작 '킹덤 오브 헤븐'을 다시 봤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들의 출처를 찾고자 본 영화였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생각의 출처에 대한 강한 의문. 생각이라는 것조차 내가 임의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면 그 절반의 것들은 나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는 생각들이 나를 채우고 있을 것이다.



밤마다 떠오르는 그 생각들의 출처가 어디일까. 분명 지나간 시간들의 부산물일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생각들의 생성에 나는 크게 관여할 수 없고 오직 떠오르는 생각들에 의해 쉬 잠식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는 경우도 흔하다. 생각의 흐름에 빠지다보면 생각은 변질되고 그것은 잡념이 된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이 잡념을 없애야 한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의 의지만으로 생각을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으로 이어진다. 



물론 간혹 이 생각지 못한 생각들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혜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잡념을 없애는 작업에는 부지런해야겠지만 새로운 생각들, 깨끗한 생각들에 대해선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거기에 신의 목소리가 담겨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창할 것 없다. 신이라고 해서 뭐가 있다는 게 아니다. 발명가라면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지식 그 너머의 새로운 길을 여는 아이디어를 바란다. 바로 의지와 상관없는 무언가의 발견이다. 작가라면 소설을 쓰는 중에 떠오르는 반짝이는 대사의 출현을 반길 것이다. 



킹덤 오븐 헤븐에는 잊을 수 없는 명장면, 명대사가 있다. 


발리안 : "What is the Jerusalem."


살라딘 : "Nothing." 


"Everything."


예루살렘을 두고 기독교와 이슬람 두 진영이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까지 치열한 전투를 하는데, 마지막의 질문 '도대체 그 예루살렘이 대체 뭐길래'라는 질문에 살라딘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다"라고 답했다.


영화 속 발리안은 이 말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전투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불태우지 않으면 전염병이 돌 수 있는 상황에서 발리안 앞에 선 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불 태우면 저들은 부활시에 일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발리안은 딱 잘라 말한다. 


"지금 불태우지 않으면 전염병이 돈다. 신도 이해할 것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신이 아니니까 문제없다."



발리안이 예루살렘을 포기하는 것도, 살라딘이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가치는 그 자체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섬기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과연 나는 도에 지나치게 무언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인간을 배제한 인간들이 저지른 일들이라는 것. 고작 해봐야 성 하나 탈환하는 일이었다. 거기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이 영화가 11세기에서 13세기 말까지 유럽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몬 '십자군 전쟁'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 더욱 그 메시지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전쟁으로 죽어간 이슬람의 청년들과 여인들,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예수를 죽인 역사의 죄인이라는 누명으로 끔찍한 죽음을 맛봐야 했던 유대인들. 대체 그 예루살렘이 무엇이기에 살인도 용납될 수 있단 말인지. 생각하면 복잡하다.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올해 여기저기서 일을 좀 많이 거들었다. 그런데 같이 일을 좀 거드는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킹덤 오브 헤븐'에 나오는 예루살렘에 미친 인간들의 작태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을 보고 실망하기를 여러번 했다. 영화나 현실이나,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인간들은 어디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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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미쳐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것도 죄다. 인간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일에 미쳐버린 것 만큼 더러운 것도 없다. 일의 결과물에 집중해 주변 인간들을 돌보지 않는 인간들과 함께한 시간의 결과는 이별 뿐이다. 저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 싫다는 감정 뿐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 가운데 인간을 돌아보지 못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재앙를 가져왔는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인류의 진보와 평안은 손에 결코 잡히지 않는 신기루일 뿐이다.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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