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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예수의 마지막 7일, 예루살렘 멸망과 깨어 있으라

by 하 루 살 이 202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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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말하다 29] 예수의 마지막 7일, 예루살렘 멸망과 깨어 있으라

 

 

예루살렘 입성 후 셋째 날에 있었던 10가지 일(이하 도표)

1. 무화과나무의 마름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의 질문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3. 예수의 비유 - 포도원을 소작인에게 맡기고 간 사람
4. 바리새인의 반박 - 가이사에게 세를 바침에 대한 질문
5. 사두개인의 반박 - 부활에 대한 질문
6. 서기관 중 한 명의 계명에 대한 질문
7. 예수의 반박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냐"
8. 예수의 서기관에 대한 경고  
9. 과부의 두 렙돈
10. 종말 선언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후 셋째 날에 하신 마지막 말씀, 종말에 대한 이야기까지 왔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전을 가리켜 한 말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라고 하셨다. 이 예언은 40년 뒤에 성취됐다.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에는 이런 기록이 담겨있다. 

 

 

예루살렘이 포위된 기간 동안 포로로 잡힌 자의 수는 9만7000명, 사망자 수는 110만명에 달했다. 이 사망자 수의 대부분은 예루살렘 시민이 아닌 유대인이었다. 

 

로마 병사들은 예루살렘이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고 몹시 기뻐하였다. 

 

불길에 휩싸인 성전에서 내뿜는 연기는 먼 곳까지 퍼졌으며 죽어가는 유대인의 신음 소리는 먼 데까지 메아리쳤다. 성전이 세워진 산도 높은 성전 자체의 건물도 컸기 때문에 성전에서 내뿜는 불길과 연기는 멀리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 전체와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지시하였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의 기록.

 

 

 

 

티투스는 완전한 성전 파괴 지시를 내린 후 다시 망대 몇 개와 서쪽 성벽은 놔두라고 명령했다. 그 서쪽 성벽은 장차 수비대 병사들의 진영으로 쓸 목적이었다. 그 서쪽 벽은 2000년이 지난 지금 유대인의 기도처가 되었고, 우리에게는 통곡의 벽으로 불린다. 

 

멸망에 대해 말씀하신 후 예수께서는 감람산에 가서 성전을 마주 대해 앉으셨다. 야고보, 요한, 안드레가 종용히 종말의 때를 물었다. 요세푸스의 예루살렘 멸망의 기록을 읽어보면 이 종말의 때를 예수께서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말씀하셨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께선 40년 후 있을 예루살렘 멸망만 아니라 역사의 종말, 시간의 마침을 말씀하신 것을 알게 된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막 13: 24-27

 

 

예수는 단순히 40년 뒤의 일만 아니라 진짜 종말에 있을 하늘의 징조와 재림, 구원의 역사를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정확한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셨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간혹 기독교의 탈을 쓴 자들이 사람들을 현혹하려고, 재물을 갈취하려고 종말을 이용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됐다.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그들이야말로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언제인지 모르나 다가올 종말의 때는 분명히 있다. 이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성경에 적혀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까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예수께서 이 종말을 앞둔 우리에게 하신 조언과 부탁은 종말의 단어처럼 심각하지 않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깨어 있으라. 

 

 

예수께선 우리에게 이 한 마디만 부탁하셨다. 깨어 있으라.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분명 두려움을 일으키나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며 현실적이었다. 종말을 다급한 마음으로 받을 필요도 없고 잠잠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사람, 조용히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 그 사람이 곧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깨어 있는 사람은 단정하고 자기를 돌볼 줄 알며, 또 타인을 돌아볼 줄 안다. 종말의 말씀을 이해한 사람은 결코 광장에서 불신지옥을 외치지 않는다. 사람을 겁주지 않는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이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Therefore comfort each other

and edify on another, just as you also are doing.

 

살전 5:4-5, 11

 

 

근신하라는 뜻은 영어로 '(나를) 지켜보고 watch', '냉철하고 진지한 sober' 한 상태를 말한다. 자신을 살핀 우리의 다음 할 일은 서로를 편하게 comfort 해주고 서로 덕을 세우데 있다. 종말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일상의 언어로 쉽게 요구된다. 그러니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갖출 자세는 얼마나 정직하고, 침착하며, 인간적이겠는가. 재산을 바치고 가족을 포기하고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예수 말씀과 상관없는 자들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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